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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o Story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 고독, 회복 그리고 용기

by canadamiso 2025. 11. 3.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 홀로 남겨진 이들이 함께 나누는 겨울의 온기

겨울이 오면, 우리는 유난히 감정의 온도에 예민해집니다.
하얗게 내리는 눈, 벽난로의 붉은 불빛, 그리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스며 나오는 사람들의 온기. <The Holdovers (바튼 아카데미, 2023>는 바로 그런 계절의 정서를 담아낸 영화입니다.

크리스마스 방학 동안 학교에 남겨진 교사, 학생, 그리고 조리장이 각자의 상처와 고독을 마주하며, 서로를 통해 회복과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이야기.
1970년대 미국 북동부의 차갑고 고요한 배경 위에서, 영화는 인간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우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 고독 – 남겨진 이들의 정서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의 시작은 쓸쓸합니다.
눈 덮인 캠퍼스와 텅 빈 기숙사, 그리고 그 안에 남겨진 세 사람의 외로움. 영화는 그 고독을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은 현실적인 외로움을 섬세하게 비춥니다.

학생 앵거스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가족은 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는 가족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랫동안 ‘불청객’처럼 살아왔습니다.
그에게 학교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동시에 감옥입니다. 반항적인 태도와 불친절한 말투는 사실 상처받기 전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갑옷일 뿐이죠.
그의 눈빛엔 늘 방어와 외로움이 공존합니다 — “나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묵묵한 외침처럼.

폴 교사는 지적이고 원칙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진지함은 사람들 사이에 벽을 세웁니다.
학생들과는 늘 부딪히고, 동료들에게조차 냉소적인 인물로 인식되죠.
그의 고독은 나이 들어 쌓인 자존심과 후회가 만든 결과입니다. 그는 자신이 옳았다고 믿지만, 그 믿음 뒤에는 “그래야만 버틸 수 있었다”는 쓸쓸한 진심이 숨어 있습니다.
폴의 고립은 그저 사회적 거리감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부끄러움과 인간관계의 피로감이 빚은 내면의 얼음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메리.
그녀는 전쟁에서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 상실은 겉으론 조용하지만, 영화 내내 묵직하게 흐릅니다.
그녀는 늘 음식을 만들며 사람들을 챙기지만, 그 손길에는 말하지 못한 슬픔이 묻어납니다.
그녀의 고독은 절망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로서 짊어진 기억의 무게입니다.

이들이 머무는 바튼 아카데미는 마치 세 사람의 내면을 닮은 공간입니다.
고요하고, 차갑고, 닫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온기가 피어납니다.
서로를 견디기 힘들어하던 그들이 함께 지내며 나누는 사소한 대화, 공용 식탁 위의 따뜻한 수프 한 그릇, 어색한 미소 속의 미묘한 변화를 통해, 외로움은 차츰 ‘이해’라는 언어로 번역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영화는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고독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전제 조건이다.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 함께함의 회복 - 대체가족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바로 ‘대체가족’의 형성 과정입니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며 만들어내는 유대.
그 관계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사소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폴은 규칙과 원칙으로만 세상을 유지하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앵거스의 거칠고 상처 입은 영혼을 마주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감정의 무게를 인정하게 됩니다.
학생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법을 배우고,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 법을 조금씩 익혀 갑니다.
그 과정은 어색하고, 때로는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 속에 진짜 ‘인간적인 교감’이 싹트죠.

앵거스 역시 변합니다.
그는 늘 세상에 대한 분노로 자신을 지켜왔지만, 폴과 메리를 통해 ‘돌봄’이라는 낯선 감정을 경험합니다.
처음엔 그 온기가 낯설고 부담스럽지만, 어느새 그 마음이 자신을 지탱해주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어른에게 마음을 열고, 다시 세상에 기대 보려는 순간 — 그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큰 정서적 전환점입니다.

메리는 두 사람 사이의 온도 조절자이자, 정서적 중심입니다.
그녀의 존재는 늘 조용하지만 단단합니다.
그녀의 요리는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맞춰주는 언어입니다.
따뜻한 스튜 한 그릇, 조용한 대화, 그리고 웃음 한 조각.
그 안에는 ‘돌봄’과 ‘이해’라는 감정이 배어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이 함께하는 장면들은 모두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느껴집니다.
피로 이어지지 않아도,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그건 분명 가족일지도 모릅니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아픔을 덜어주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가 그려내는 가장 인간적인 가족의 형태입니다.


🌱 용기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는 변화의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 변화는 큰 사건이 아니라, 조용한 깨달음의 순간에서 일어납니다.

폴은 영화 내내 자신과 싸웁니다.
완고함 뒤에 숨은 불안, 옳음 뒤에 감춰진 외로움,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벽의 높이에 대한 후회.
그는 앵거스를 통해, 다시금 ‘누군가를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에게 가르침이란 지식 전달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과정으로 변합니다.
폴이 자신을 용서하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진정한 의미의 회복을 맞이합니다.

앵거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폴과 메리를 통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경험을 합니다.
그 깨달음은 그에게 단순한 위로를 넘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됩니다.
세상을 향한 냉소가 조금씩 걷히고, 그 자리를 신뢰가 대신합니다.
그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메리.
그녀는 여전히 아들의 부재를 견디지만, 그 상실 속에서 다른 두 사람을 돌보며 조금씩 스스로를 회복합니다.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이 결국 자신을 치유하는 일임을, 그녀는 몸으로 느낍니다.
그 따뜻한 순환의 에너지가 영화 전체를 감싸며, 잔잔하지만 강한 울림을 남깁니다.

영화는 말합니다.
변화는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단 한 사람과의 진심 어린 연결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 결론 – 차가운 계절을 따뜻하게 만드는 영화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는 차가운 겨울 속에서 인간의 온기를 발견하게 해주는 영화입니다.
고독한 이들이 모여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며, 관계 속에서 조금씩 변화해 가는 과정이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겨울의 쓸쓸함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날,
이 영화를 통해 잠시 마음을 녹여보는 건 어떨까요.
<바튼 아카데미(The Holdovers)>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진짜 가족이란, 결국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임을 — 조용히, 그러나 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