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나움]-생존, 책임, 존엄 : 아이의 고소가 던지는 질문](https://blog.kakaocdn.net/dna/cHqEpI/dJMcaa4VpVS/AAAAAAAAAAAAAAAAAAAAACIhZwAscFapkMgbFhj5WE5WP9-fBUBvThu1u38ONzPg/img.webp?credential=yqXZFxpELC7KVnFOS48ylbz2pIh7yKj8&expires=1769871599&allow_ip=&allow_referer=&signature=locgLr8GoKBVj2U911imW%2FVe9c0%3D)
<가버나움>은 태어나는 것조차 고통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우리 앞에 내보입니다. 한 아이가 자신의 부모를 법정에 세우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단지 자극적인 설정에 그치지 않고, '태어난 이후의 삶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집니다. 자인의 고소는 상징적이면서도 현실적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태어나야만 했는가에 대한 절규이자 항변입니다.
감독 나딘 라바키는 실제 난민과 거리 아이들을 배우로 기용하며, 픽션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지우는 전략을 택합니다. 카메라는 인물들을 가까이에서 포착하며, 자인의 얼굴과 시선을 통해 관객이 그의 삶에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듭니다. 오히려 그 어떤 음악보다 강력한 감정의 파동은 자인의 침묵과 고통스러운 눈빛에서 비롯됩니다.
이 영화는 불우한 삶을 소비하지 않습니다. 자인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부풀리지 않고, 그저 카메라가 아이의 삶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사회 구조의 부조리함을 폭로합니다. 아동 방치, 미성년 결혼, 출생 미등록, 난민 문제 등 수많은 현실들이 자인의 하루 속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태어나는 것이 삶의 시작이 아니라, 고통의 시작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영화가 끝나도 오래도록 관객의 마음에 남습니다.
생존: 아이에게 허락되지 않은 '어린 시절'
자인에게 생존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를 버티는 것이 전부이며, 삶의 질이나 의미를 논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는 정확한 나이도 모릅니다.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입니다. 이런 상황은 단지 레바논의 특정 지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 난민촌과 빈곤 지역에서 반복되는 보편적 현실입니다.
자인은 부모에게서 보호받지 못하고,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며, 동생을 포함한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린 나이에 노동 현장으로 내몰립니다. 그는 가스를 나르고, 설거지를 하고, 장사를 돕고, 병든 여동생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통보다 더 참기 어려운 것은, 그 누구도 자신을 '어린아이'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어린아이의 삶이 어떻게 사회 구조 속에서 짓밟히는지를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자인은 단순히 가난한 아이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무책임의 결과물이며, 국가가 시스템으로 보호하지 못한 한 인간입니다. 부모가 무능하다고 끝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 부모 역시 가난과 무지 속에 방치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생존을 묘사하면서도 자인을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작은 정의를 위해 분투합니다. 아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어린 시절이란 것이 과연 누구에게 주어지는가”를 묻게 만듭니다.
<가버나움>은 말합니다.
“어린 시절이 없다면, 그 삶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이 물음은 가난과 불평등 속에 놓인 수많은 자인들에게 적용되는 물음입니다.
책임: 아이를 낳는다는 것의 무게
『가버나움』의 백미는 '책임'을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자인이 부모를 고소하는 행위는 단지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무책임함을 고발하는 행위입니다. 영화는 아이를 낳는다는 행위가 단지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라,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합니다. 단순히 출산만을 부추기고, 그 이후의 삶은 개인이 알아서 하라는 구조는 이미 실패한 체계입니다.
자인의 부모는 자녀를 다수 낳고도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생계유지를 위해 아이를 조혼시키는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이 부모를 단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상황을 통해, 가난과 무지가 어떻게 무책임으로 이어지고, 그 결과가 다음 세대에 어떤 피해를 주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특히 자인이 여동생을 지키지 못했을 때 느낀 절망과 죄책감은, 단순히 형제애를 넘어 ‘나도 이 사회의 피해자인 동시에 책임을 느끼는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어린아이가 사회 구조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바꾸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자인의 고소는 하나의 행위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를 향한 경고이자, 윤리적 질문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낳았고, 방치했고, 무시했습니다. 나는 이제 그 책임을 묻겠습니다.”
자인의 고소장은, 단지 법적 문서가 아닌 사회 구조를 향한 가장 급진적인 윤리적 외침입니다.
존엄: 불쌍함을 넘어, 권리로 나아가다
<가버나움>은 자인을 단지 동정의 대상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팔지 않으며, 언제나 존엄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거리에서 잠을 자고, 음식을 훔치며, 아기를 돌보는 등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자인은 끝까지 주체적인 태도를 잃지 않습니다. 이는 영화가 관객에게 요청하는 윤리의 방식과도 깊이 연결됩니다.
존엄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권리입니다. 자인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말할 기회도 없었지만, 법정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불의에 대해 항변할 수 있는 인간입니다.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지점은, 자인이 불쌍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존엄성입니다.
감독은 아이를 통해 '존엄'이라는 개념을 탈권위적으로 재정의합니다. 성인, 교육, 지위, 국적과 무관하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환기시키며, 관객에게 **“우리는 과연 이 아이보다 나은 존재인가?”**라는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인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웃는 순간, 우리는 압도적인 감정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단순한 희망의 웃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간임을 선언하는 미소입니다. 아이가 웃을 수 있는 세계, 그 미소에 책임을 지는 사회. 그것이 이 영화가 바라는 가장 작지만 절실한 변화입니다.
<가버나움>은 말합니다.
“존엄은 시혜가 아닌 권리다.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방식은, 가장 작고 약한 자에게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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